[Creative Letter No. 69, 문방사우 (文房四友)]


0.

문방사우(文房四友)란 말을 기억하시는지요? 문방(文房)이란 학문을 닦는 선비인 문사(文士)의 방이란 뜻입니다. 문방사우(文房四友)는 문사들에게 꼭 필요한 도구인 지필묵연(紙筆墨硯), 즉 종이, 붓, 먹, 벼루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학용품을 사기 위해 들르는 학교 앞의 문방구(文房具)라는 말도 문방에 갖추어야할 것들이란 뜻인 것입니다.

1.
일주일에 한번씩은 아이들과 함께 꼭 들르는 곳이 대형 문구점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만들 요량으로 도화지도 사고 색종이도 사고 여러가지 궁리를 이곳에서 합니다. 아이들 핑계로 따라 나서는 곳이긴 하지만 저 또한 이런 저런 신기하고 이쁜 것들을 쳐다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하지요.

2.
지난 주말에 풀, 샤프펜슬, 색종이 이 3가지 신기한 문구들을 구입했습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런 물건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억들이 꼭 있을 겁니다.

  • 풀뚜껑을 열어둔 채로 방치해 둔 탓에 풀 칠하는 스펀지 부분이 마르고 막혀서 못쓰고 버렸다.
  • 샤프펜슬 뒤에 끼워져 있는 작은 지우개가 너무 작아서 얼마 못가 다 닳아서 더 이상 지울 수 없다.
  • 색종이들을 꺼내서 몇 장 사용한 후 여기 저기 흩어진 채 방치되어 구겨지거나 못쓰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만 보아도 이런 일들이 쉽게 않게 관찰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단순히 칠칠맞은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조상 대대로 겪어오던 불편인 것 같습니다.

3.
그러나~~ 불편을 그대로 두면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법. 누군가 이것을 진정한 불편으로 여기고 개선의 노력을 할 때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온 물건들을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듭니다.

(1) 어떻게 하면 풀칠 스폰지가 마르더라도 남은 풀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사진의 풀을 보면 풀뚜껑 위에 보조 뚜껑을 씌우고 그 안에 여분의 풀칠스폰지를 하나 더 넣어두었습니다. 혹시 스폰지가 말라 못쓰게 되더라도 여분의 것으로 바꿔끼워서 남은 풀을 사용할 수 있네요. Wow !

(2) 샤프 뒤에 꽂혀 있는 지우개가 좀 길어서 별도로 지우개를 준비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사용할 수는 없을까?

 

 

 

 

 

샤프 펜슬 뒷쪽에 적당한 길이의 지우개를 심어두었습니다. 평소에는 길쭉한 지우개가 안쪾에 들어가 있다가 지우개 주위를 살살 돌려주면 지우개가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있습니다. 별도로 지우개를 준비하지 않아도 한동안은 잘못 쓴 부분들을 편리하게 지울 수 있게 되었네요. Wow !

(3) 사용하고 남은 색종이들이 흩어지지 않고 가지런히 한데 모여 있게 할 수 있을까?

 

 

 

 

 

이 색종이는 한쪽면이 책처럼 약한 제본이 되어 있어 필요한 색종이를 떼더라도 나머지 종이들은 원래 묶음 상태 그대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사용하게 해보니 필요한 부분만 떼어 쓰니 뒷정리가 아주 깔끔합니다. Wow !

4.
이런 사례들을 보면 참 기발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뭐 그냥 그러네. 내 분야의 일이 아닌데 뭐!’ 하며 당연한 것들로 여기고 나도 조금만 고민하면 이런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고민하고 먼저 멋진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천한 사람들이 있었음에, 누가 좀 더 똑똑하고 창의적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불편을 대수롭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문제로 바꿀 수 있는 마음가짐.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첨단 IT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문방사우는 지필묵연이 아니라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스마트폰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즉흥적이고 빠른 반응에 점점 익숙해 져 가고 있습니다. 옛 문인들이 벼루에 먹을 정성껏 갈며 수양했던 것처럼 우리도 내 주변의 작은 것들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과 친해지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에게도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멋진 생각의 주인이 될 기회가 분명 찾아올 것입니다.

이만 총총…

발명원리  No.07 포개기 / Nesting
한 사물을 다른 사물 속에 넣는다.  그 사물을 다시 다른 사물 속에 넣는다.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의 구멍을 통과한다.

발명원리 No.20. 유익한 작용의 지속 / Continuous useful action
지속적으로 유용한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헛된 동작, 중간 동작을 제거한다.
전진 후퇴의 왕복동작을 회전동작으로 바꾼다.

발명원리 No.03  국소적 품질 / Local quality
사물이나 외부 환경(작용)의 구조를 동질적인 것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바꾼다.
사물의 여러 부분들이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게 한다.
사물의 각 부분을 작용상 가장 유리한 조건이 되도록 배치한다.